국내 스포츠 골프 시장 규모는 약 4조 원으로 추정된다. 중장년층을 주요 타깃으로 하는 아웃도어 시장이 7조 원 대까지 성장했던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지만 2000년 대 초 전체 매출 1조 원 대에서 시작해 매년 성장해왔다.
국내에는 1980년대 부터 골프웨어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1세대 브랜드로는 아놀드파마(’81년), 슈페리어(’81년), 라코스테(’85년), 잭니클라우스(’85년), 이동수(’88년) 등이 있다. 1990년대 들어서 골프시장은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이 때 2세대 브랜드 울시(’91년), 닥스(’97년), 레노마(’96년)가 등장했다. 이 때부터 골프웨어는 어덜트캐주얼 시장에 진입해 기존 남성복이 가져갔던 시장을 대체했다.
한국 초기 골프시장은 부유층, 대기업 임원 등 성공한 사람들의 고급 스포츠로 여겨졌고 일반인들은 접근이 어려웠다. 하지만 현재는 골프시장 규모가 급격히 커졌고 대중화되었다. 2019년 기준 골프장 숫자는 467개, 18홀 기준 541개(출처 골프산업신문)로 18홀 이상의 골프장이 모두 43개에 불과했던 1990년도에 비해 무려 12배나 증가했다.
골프 대중화에 기여한 또 다른 요인은 스크린골프장의 확산이다. 1990년대 초중반 도입되어 90년대 후반 IT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2018년 기준으로 10개의 스크린골프 브랜드가 8,183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고 매출은 1조2,819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유원골프재단)
상류사회의 표상 ‘골프웨어’
이렇듯 대중화되고 성장하는 골프시장에서 골프웨어는 소비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인식되고 또 어떻게 소비되어 왔을까?
2000년대 중반까지 골프웨어는 40대 이상 어덜트층이 주요 고객이었다. 골프웨어는 골프를 치고 즐기기에 적합한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일본의 영향을 받아 골프를 위한 기능을 기본으로 필드에서 돋보일 수 있는 화려한 색감과 패턴의 조화가 국내 디자인의 주류였다. 스포츠 골프웨어는 골프를 위한 기능과 그 사용가치에 충분한 디자인과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한국에서 골프는 사람들 모두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레저스포츠로 시작되지 않았다. 희소한 골프장과 고가의 장비, 고가의 회원권, 스포츠를 즐기기 위한 고급 문화, 까다로운 운동 예절은 일반인들이 쉽게 골프를 즐길 수 없도록 진입장벽을 만들었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경제적, 시간적, 문화적의 여유를 가진 상위계급이라는 인식이 고착되었다. 이런 골프의 이미지와 함께 골프웨어도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만이 입는 옷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가격대를 높게 책정해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하고 희소성을 유지한 전략도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골프웨어=고급=부유층’이라고 각인되었다.
실제 골프를 치지 않더라도 골프웨어 자체는 이미 사회적 지위와 계급을 나타내는 상징성을 획득했다.
따라서 스포츠 골프웨어는 더 이상 골프를 칠 때 입는 옷이라는 사용가치로써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르다는 ‘차이 표시’ 기호로 소비되는 지위에 이르렀다. 골프를 치는 상위계급은 골프웨어를 입는 행동을 통해 하위계급과 ‘구별 짓기’를 했다.
이에 반해 하위 계급은 상위 계급을 모방하고 그들이 원하는 상위계급 준거집단에 소속되기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골프웨어를 소비했다. 하위 계급 중 실제 골프를 칠 줄 모르는 구성원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골프를 칠 줄 아느냐’가 아니라 ‘골프를 치는 사람처럼 보이느냐’가 중요했다.
스포츠 골프브랜드 도입기에 골프웨어는 실제 골프를 즐기는 상위계급들의 과시를 위한 수단이었고, 이후 성장기에는 하위계급들의 모방을 통해 성장이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골프웨어는 중장년층에게 필수 캐주얼 아이템이 되었고, 실제 ‘DO GOLF’로써 기능성 보다는 ‘평상시에 입는 범용적 캐주얼’로 착장되었다.
잭니클라우스, 닥스, 슈페리어, 울시 등이 캐주얼 콘셉트에 충실한 브랜드들이었고, 이 브랜드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우월적 지위를 누리며 높은 성장률과 함께 많은 매출과 이익을 가져갔다.
2000년대 중반이 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포츠 골프장은 늘어났고, 골프인구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골프장은 213개에서 507개로, 골프인구는 1,641만 명에서 3,204만 명으로 늘어났다. 퍼블릭 골프장이 증가하면서 회원제 골프장은 영업 이익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골프 회원권 가격도 크게 하락했다. 여기에 더해 스크린골프장은 골프장에 가지 않더라도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골프 환경은 변했고 이젠 골프가 더 이상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지 않게 되었다.
‘아웃도어’ 상징소비 탈환
2000년대 중반에는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즐기던 레저스포츠 문화도 변했다. 아웃도어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모든 40대 이상은 아웃도어를 입어야 했고, 아웃도어는 골프가 누리던 상징소비의 자리를 빼앗았다.
아웃도어의 영향은 등산복을 일상 캐주얼로 착장하게 만든 것 뿐만이 아니다.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극한 상황에서도 등산이 가능하도록 첨단 기능을 상품에 집어넣었다.
고어텍스를 비롯 고신축성, 흡습속건 기능의 첨단소재들을 의류 전반에 적용했다. 소재 뿐 아니라 인체의 움직임과 체형을 분석하고 그 특징을 과학적으로 패턴에 접목해 활동성을 높였다. 사람들은 기능에 (실제 체감 효과와는 별개로) 열광했고 그 기능들은 일반화되었다. 고급 기능에 눈높이가 맞춰진 소비자들을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러한 흐름은 다른 복종에도 영향을 미쳤다. 골프웨어에도 기능과 기술이 접목되었다. 골프 스코어 향상을 위해 퍼포먼스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의류와 장비들이 개발됐다. 바야흐로 기능성 골프브랜드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중저가 브랜드, 골프 시장 진입
2000년대 초반 골프마켓의 성장기를 지나면서 골프브랜드들은 이미 다양한 세그먼트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1세대와 2세대 브랜드들이 고급 어덜트캐주얼로 이미지를 획득한 이후, 시장은 커졌고 소비자는 욕구가 다양해졌으며 브랜드는 니치마켓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수입 명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하이엔드 존이 생겼고, 가두점을 중심으로 중저가 브랜드가 자리를 잡았다. 또 글로벌스포츠 브랜드들이 골프 라인을 론칭하고 확대했는데 나이키 골프와 아디다스 골프, 푸마 골프 등이다.
이들은 모브랜드의 강력한 브랜드력과 마케팅력, 글로벌 파워로 골프 시장에 진입했고 곧 시장을 석권할 거라 여겨졌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는 골프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수입 명품 골프브랜드도 지금은 주춤하다. 왜 그럴까?
골프 시장의 ‘민주화’
2019년인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레저스포츠를 즐긴다. 조깅, 요가, 바이크, 클라이밍, 요팅 등 이 중 어떤 스포츠는 일부 계급이나 계층만이 누릴 수 있다고 과거에는 생각되었지만 이젠 대부분 대중화되었다. 동시에 레저 스포츠웨어도 성장했다.
골프는 예전에는 부유층 일부만 즐기는 고급스포츠로써 인식되어 왔지만 이젠 2030뿐 아니라 여성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누리는 레저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골프가 과거에는 과시의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즐기는 수단이다. ‘골프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레저스포츠를 소비하는 목적이 이전에는 과시 혹은 ‘구별짓기’였다면 이제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 즐기기 위한 것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금 골프웨어는 어떠한 기능을 할까?
골프웨어, 소비가치 변화 이해해야
스포츠웨어의 기능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지고, 향유하기 위한 활동으로 골프를 치는 골퍼들에게 골프웨어란 자신의 스코어를 향상시켜 줄 수 있는 본연의 기능을 잘 할 수 있는 옷과 도구일 뿐이다.
골프웨어가 갖는 이미지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또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것처럼 보여 지는 구시대의 가치는 이제 의미가 없다. 골프웨어는 ‘골프를 위한 기능을 보유’하거나 적어도 ‘그러한 기능을 보유한 것처럼 보여 지는 옷’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골프웨어는 그것을 입는 사람이 ‘골프를 잘 치는 사람’, 또는 ‘골프를 잘 치는 사람으로 보여지게 하는’ 차이표시 기호로써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골프웨어는 소비될 수 있으며, 이미지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구매를 강요할 수 있다.
요즘 골프브랜드 중 백화점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브랜드는 PXG, 타이틀리스트 등이다. 모두 기능성을 강조하고 골프의 퍼포먼스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기획된 브랜드들이다. 골프조닝의 정체성을 차별화해서 보여줄 수 있고 매출까지 높으니 당연히 백화점 바이어들에게 선호될 수밖에 없다.
반면 1~2세대의 볼륨브랜드들은 고객이탈과 신규고객 미유입으로 볼륨이 축소되고 있다.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니 미래도 불투명하다. 유통에서는 매출과 상관없이 그들을 퇴출 우선순위로 꼽는다.
수입브랜드들은 기존에 갖고 있는 이미지를 활용해 현상유지에 급급한 상황이다. 나이키 골프, 아디다스 골프와 같은 브랜드는 골프를 잘 치는 사람으로 보여 지도록 구별지어주기 보다는 글로벌 브랜드 복종 중 하나를 입은 사람처럼 보이도록 할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버버리골프, 폴로골프, 보스골프, 푸마골프와 같은 명품 골프브랜드의 철수나 부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의 레저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다. 레저스포츠를 대하는 방식과 누리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골프브랜드를 소비하는 이유가 이전에는 과시를 위한 ‘구별짓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즐김과 누림의 이미지 그리고 해당 스포츠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며 높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는 이미지를 갖고자 함이다.
소비자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력 필요
골프브랜드는 변화한 소비자의 기호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상품을 기획해야 선택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이나 추구하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존의 이미지를 적절히 변화할 수 있어야 살아남는다.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그에 따른 소비가치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브랜드는 사라지고 있다. 이것은 다양한 골프브랜드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입증되었다.
사람들이 무엇을 소비하고 왜 소비하는지 상품기획자와 디자이너들의 깊이 있는 통찰력이 필요한 이유다.